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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 여름 날의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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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6년 03월 01일 / by 작성자catlab / 조회수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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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씨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길고양이가 있습니다. 이름은 노랭이입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3년이 지난 지금도 그 고양이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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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5월 경이었습니다. 성인 가슴 높이 정도 되는 주택가 담벼락 위에 깡 마른 치즈 태비 한 마리가 자주 웅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피부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털은 듬성듬성 빠지고 몸은 야위어 그 귀여운 식빵자세가 도저히 폼이 나질 않았습니다.

근처에는 고양이를 매우 좋아하는 J씨가 살고 있었습니다. J씨는 동네 술집에서 서비스 안주로 나오는 꽁치구이를 꼭 챙겨뒀다가 노랭이에게 가져다 줬습니다. 그때마다 노랭이는 바닥에 놓인 꽁치를 덥썩 물고선 황급히 내달렸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입에 물지 못해 살코기가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져 나가기 일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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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J씨는 동네 길고양이들을 위해 냉동실에 있던 고기를 모조리 꺼내 익혀서 노랭이가 자주 다니는 담벼락 아래에 놓아뒀습니다. 길고양이들이 냄새를 맡고 하나 둘 모여들었습니다. 족히 일곱 마리가 넘는 길고양이들이 밥그릇에 둘러 앉아 맛나게 고기를 먹었습니다. 노랭이도 근처에 와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노랭이는 고기 한점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다른 고양이들의 하악질과 앞발질에 뒷걸음 치다가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보고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노랭이는 힘이 약한 길고양이였습니다.

J씨는 캔을 하나 들고 나와서 노랭이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노랭이가 그 캔을 다 먹을 때까지 자리를 지켜줬습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J씨는 노랭이가 보일 때마다 그런 식으로 밥을 챙겨줬습니다.
한 달이 지나자 살이 제법 붙고 털도 고루 나기 시작했습니다. 변한 것은 노랭이의 외모만이 아니었습니다. 노랭이는 J씨를 친구, 아니 ‘가족’으로 생각했던 게 분명했습니다. 거처를 J씨가 사는 건물 주차장으로 완전히 옮겨서 아주 가깝게 지냈습니다. 밥이 늦으면 창 밖 담장에서 조르기도 했고 건물 입구에 앉아 있다가 출퇴근길을 언제나 배웅했습니다. 가까운 세탁소나 슈퍼마켓은 동행했는데요. J씨를 뒤쫒다가 그녀가 가게에서 나오면 다시 뒤따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광경을 동네 사람들은 신기한 듯 바라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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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씨도 노랭이를 무척 아꼈습니다. 병원에서 구충제를 타와서 먹이고 장마 철엔 주차된 자동차 밑에 스티로폼 박스를 넣어줬습니다. 길에 사는 게 안타까워서 입양처도 알아봤습니다. 무엇보다 J씨를 감동시켰던 건 노랭이의 고운 마음씨였습니다. 노랭이는 자신보다 약한 친구들에게 기꺼이 베풀었습니다. 한쪽 눈이 좋지 않는 얼룩이 친구를 그 집 앞으로 데리고 왔고,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 고양이도 데리고 와서 J씨가 준 밥을 나눠 먹었습니다. 그 집 주차장엔 늘 세 마리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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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어느 새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었습니다. 아침 공기가 제법 찬 9월, J씨는 바쁜 출근길을 나서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넋을 잃고 서있다가 끝내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습니다. 집 앞 화단에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노랭이가 아기 고양이를 꼭 껴안은 채 잡초 더미에서 단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노랭이는 꼬리와 두 앞발, 머리로 아기 고양이를 안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기 고양이는 노랭이에게 완벽하게 안겨 있었습니다. 건물주의 항의에 더 이상 노랭이에게 잠잘 곳을 마련해주지 못했던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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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길고양이들을 보살펴 줄 수 있겠냔 지인의 말을 들을 때마다 J씨는 불안해졌습니다. 틀린 말도 아니었으니까요. 불운은 생각보다도 빨리 찾아 왔습니다. 비가 굉장히 많이 오던 밤이었습니다. 외출을 하려던 J씨는 차에 치여 죽어 있는 아기 고양이를 발견했습니다. 죽은지 얼마되지 않은 듯 했습니다. 쏟아지는 비 때문에 온 몸은 젖어있었지만 몸은 따뜻했습니다. J씨는 작은 삽을 들고 나와 아기 고양이를 화단 구석에 묻어줬습니다. 그리고 무덤의 표식처럼 그 위에 작은 돌 하나를 얹고선 뒤돌아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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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고양이들에게도 낯선 일이었나 봅니다. 그 즈음부터 노랭이도 얼룩무늬 바둑이도 전만큼 그 집 앞에 자주 오지 않았습니다. 몇 달만에 겨우 노랭이의 입양처도 나타났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노랭이는 그 전날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려습니다. J씨는 일주일이 넘도록 밤마다 노랭이를 찾아 헤맸습니다. 매일 동네를 들쑤시고 다니느라 그 동네 길고양이란 길고양이는 모두 만났습니다. 그렇지만 노랭이만은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에 놀란 듯 주차장 담벼락을 무섭게 타고 지나가더라는 이웃집 아주머니의 이야기 말곤 어떤 족적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노랭이가 돌아오지 않자 경계심 많던 바둑이도 더 이상 그 집 마당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그 집 주차장에선 평화로이 낮잠을 즐기기도 하고 장난 치던 길고양이 무리를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글 | 캣랩 장영남 기자 jekyll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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