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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연-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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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6년 01월 09일 / by 작성자catlab / 조회수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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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짖이긴 개의 얼굴이었습니다. 입엔 흰 거품이 일고 몸엔 경련이 일었습니다. 더 이상 물러 설 곳이 없었습니다.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을거야.” 
그해로 만 1년이 갓 넘은 시추 믹스견 원리를 안고 병원으로 무거운 발을 옮기던 J씨는 다짐했습니다. 퍼그 종의 진돌이를 고모가 잃어버려 대성통곡했을 때, 미니어처 핀서 종의 도도가 어느 낯선 중년의 남성 품에 안겨서 점점 멀어져 갔을 때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모두 J씨가 스무살 즈음 키운 개들이었습니다. 잃어버리거나 다른 집에 보내거나 혹은 병을 얻어 죽거나…. 개들의 운명은 사나웠습니다. 개를 몹시 사랑하는 J씨였지만 개를 키울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뒤로 J씨는 정말로 어떤 개도 키우지 않았습니다. 지나가는 개에게 눈길 한 번을 주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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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1. 여동생의 결혼
강산이 한 번 바뀐다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J씨 신변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평생 함께 할 것 같던 남자가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고, 젊은 아버지가 세상을 갑자기 떠났으며 같이 살던 형제자매들이 결혼과 취업 등으로 서울 자취집을 하나 둘 떠나갔습니다. 마지막까지 함께 살았던 바로 밑 여동생은 몸져 누워 계시는 아버지 병간호를 위해 긴 서울생활을 접고 귀향한 것이었는데 그 길에 남자도 만났습니다. 2011년 11월 11일은 여동생이 결혼을 하루 앞둔 날이었습니다. 셋째 누나의 결혼식 준비를 거들러 시골에 내려간 남동생이 늦은 시각 J씨에게 휴대폰으로 사진 한 장을 보냈습니다. 회색 털을 가진 새초롬한 표정의 새끼 고양이 사진이었습니다.

우연 2. 그 길
태어난지 한 달 반 정도 돼 보이는 새끼 고양이는 야트막한 산이 밭과 이어지고 그 밭은 다시 두 세 채의 가정집으로 이어지는 마을 초입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서 너 명의 초등생들이 새끼 고양이를 에워쌓고 있었고 때마침 남동생이 그 옆을 지나던 참이었습니다. 새끼 고양이는 길고양이 답지 않게 사람을 잘 따랐습니다. “이리온~!”하고 부르면 토끼처럼 깡총깡총 뛰어왔습니다. 남동생은 주인을 찾아주려고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고양이를 키우는 집은 없었습니다. 이대로 길에 두고 가기엔 고양이가 너무 예쁘고 어렸습니다. 누나들이 동물을 좋아하니 키워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휴대폰을 꺼내 들고 촬영 버튼을 눌렀습니다.

우연 3. 아버지의 직업
J씨가 태어난 곳은 3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시골마을입니다. 그가 중학생이 되던 해 부모님이 시내로 이사해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마트에 여러 물건을 대주는 일도 겸했던 J씨 아버지는 그 마을 창고에 쌓아둔 물건들을 다 팔지 못하고 고인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마저 일을 마무리하고 있었는데 주문이 들어오자 남동생이 상차하러 가던 길에 일어난 일었습니다. 
새끼 고양이를 J씨가 사는 서울로 데려가는 게 문제였습니다. 첨엔 동네 어르신들을 태우고 서울 예식장으로 향하는 관광버스에 태울 요량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동네 어르신들은 절대로 ‘도둑고양이’와 합승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어느 어르신은 마음이 정 그렇다면 당신 집에서 묶어 놓고 키워주겠다며 남동생을 달랬습니다. 평소에도 동생들을 잘 부러던 J 씨는 어찌할지 몰라하는 남동생에게 딱 한 마디만 했습니다. 
“무조건 데리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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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 4. 익산 여자친구

두 어 시간이 지나서 남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남동생은 익산에 사는 여자친구에게 새끼 고양이를 인계해줬으니 낼 예식장에서 만나 받으라고 했습니다. 생긴 게 잘 나서 어딜 가나 이성이 끊이지 않던 남동생이었습니다. 익산의 여자친구와도 몇 번의 위기가 찾아왔지만 연분이 닿았는지 길게 만나고 있던 터였습니다. 익산의 여자친구는 어릴 적 고양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어서 새끼 고양이를 능숙하게 보살폈습니다. 남원과 익산 중간 지점에서 고양이를 받아와 전용 간식도 사먹이고 목욕도 시키고 변도 뉘였습니다. 여자 친구는 다음 날 양파망 같이 생긴 그물 가방에 새끼 고양이를 넣어 데려왔습니다. 
“엄마가 시장에서 고양이를 이렇게 사오시더라고요. 어디로 갈까봐 넣어 왔어요. 케이지도 없고…. 구석으로 들어가면 찾기도 힘들고요.” 
손바닥만한 새끼 고양이는 얌전했습니다.

 우연 5. 그래도 사랑
J씨는 가축이라든지 노인, 가난한 사람과 같은 약자들에 한 없이 마음 아파하는 사춘기를 보냈습니다. 다른 반 친구들이 이성에 눈 뜰 때, 약자에 대한 애달픔으로 염세주의에 깊게 빠져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온 아기 고양이 만큼은 최고로 행복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고 따듯한 손길을 내밀어 줄 수 없었던 그간의 동물들에 대한 미안함의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던 지라 책도 여러 권 사서 보고 때 맞춰 병원에 데리고 가며 밥도 손수 만들어 먹이는 등 지극정성으로 돌봤습니다. 그것은 조건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의 파동대는 점점 넓어져 길고양이에게 향하고 자신에게로 향하다 이윽고 타인에게로 향했습니다. J씨는 앞으로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가꿔가야할지 삶의 방향성을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목에서 자주 행복을 느꼈습니다.

매그놀리아
“But it did happen(결국 그것이 일어났어).” 톰 크루즈가 나오는 영화 <매그놀리아>는 시종 ‘우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모든 게 우연처럼 보이지만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단 하나도 없으며 하나의 사건은 또한 모두 연결되어 있고 이런 과정에서 아픔과 고통 그리고 치유도 경험하게 된다는 메시지를 안고 있습니다. J씨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이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J씨는 “‘나미’라고 이름 붙인 그 새끼 고양이만큼 자신의 인생에 결정적 역할을 한 뭔가는 아직 없다”며 “수많은 우연이 겹치고 겹쳐서 나미를 만나게 되었는데 돌이켜 보면 마치 처음부터 나미를 만나도록 프로그래밍화 되어 있었던 것 같은 느낌도 든다”며 대화를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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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한 인연

여섯 살 J씨가 아는 세상은 ‘두려움’이었습니다. 이유는 지금도 모릅니다. 그냥 집 밖 세상이 무서웠답니다. 그래서 유치원에 가는  일은 아주 끔찍한 일이었답니다. 국민학교에 들어가서는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라는 속성을 이해하면서 ‘쓸쓸함’이 덧씌워졌고, 염세적이었던 사춘기 땐 ‘허무함’이, 스무 살이 넘어 몇 명의 이성을 만났다 이별한 뒤론 ‘차가움’이 얹어졌습니다. 어두운 감정들이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였던 것 같습니다. J씨가 학교 성적이라든지 직업 같은 것에 집착했던 이유가요. 변치 않는 보호막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J씨가 나미를 만날 당시는 인생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때였는데요. 귀인은 가장 힘든 시기에 들어온다고 하지요. 나미가 J씨의 닫힌 마음을 열게 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 면에서 나미는 J씨에게 귀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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